브루딕) 열병

연성/完 2014.07.18 01:53

브루딕 단문



 늦가을, 계절 모르고 피어난 꽃이 다음날 해가 뜰 때면 이미 추위에 시들어버릴 것을 짐작한 것처럼 찰나를 살듯이 사랑했다. 적어도 브루스에 대한 내 마음은 그랬다. 눈을 한 번 감는 동안 브루스가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눈 깜박이는 시간조차 아깝다고 여겨서 브루스와 있을 때면 눈이 금방 건조해지곤 했다.


 열 살 소년이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했을 때 으레 어른들이 짓고마는 그런 미소는 내게 어떤 감흥도 주지 않았다. 그네들의 연애사와 내 마음은 다른 선상에 있었다. 단순히 좋아한다, 사랑한다 하는 말로 감정을 설명하기 힘들었던 나는 내가 느낀 이 감정이 지금껏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무언가라고 느꼈다. 난 브루스가 좋고, 좋고, 좋고, 너무 좋아서 만약에 신에게 소원을 딱 하나 빌 수 있다면 브루스와 나를 빼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처음 느낀 그 마음은 달콤한 한때라기보다 혹독한 천형같아서 열 살의 나는 가끔씩 내 마음이 버겁고 무거워 혼자 이불을 뒤집어쓰고 훌쩍이기도 했다. 누굴 이렇게 좋아해본 적 없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다른 사람의 경험담이나 각종 매체에서 쏟아지는 사람들의 얘기는 나한테 조금의 참고도 되지 않았다. 잡은 손이 떨어지기만 해도, 시야에서 없어지기만 해도 속상하고 하염없이 서러워지는 건 의존증의 범위도 앳저녁에 벗어났다. 


 어느 날 고열에 들떠 하루종일 침대에서 나오지 못 한 내 옆에 앉아 독어로 된 책을 읽던 브루스는 이따금씩 손을 뻗어 내 이마의 물수건을 갈아주곤 했다. 나는 숨죽이고 훌쩍이다 몸이 아픈 걸 핑계삼아 애처럼 칭얼거렸다. 


 브루스가 너무 좋아서 아파요. 이러다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말에 브루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가에 미소를 담았다. 네가 아직 어려서 착각하는 거란다. 그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나는 그 말이 서러워서 열에 들떠 시야까지 불투명한 주제에 눈에 눈물을 그득 담고 울음을 터트렸다.


 아저씨가 딱 내 반만큼만 아팠으면 좋겠어요. 그럼 아저씨도 알텐데. 아무리 튼튼하고 건강한 아저씨라도 하루 아침에 앓아 누워서 누굴 좋아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깨달을 텐데. 나는 하루 종일 브루스 생각만 난단 말이에요. 아냐. 아냐. 아니에요. 브루스는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아프지 말아요. 내가 브루스 대신 다 아플게요.


 열에 들떠 헛소리처럼 잔뜩 쉬어터지고 쇳소리 나는 목소리로 색색대는 숨소리와 함께 말을 쏟아내자, 브루스는 커다란 손을 뻗어 내 입을 막아버렸다. 쉬이 쉬이. 애 어르듯이 달래며 내려보는 브루스의 손을 치우는 대신 나는 도리어 눈을 감아버리곤 양손으로 그 손을 쥐고 브루스의 손바닥에 열에 달뜬 볼을 치댔다.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딕, 너를 어쩌면 좋을까. 푸념같은 중얼거림 끝엔 짜증보단 느슨하게 풀린 웃음이 섞여있었다. 늘 브루스에게 모든 신경과 감각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브루스에 대해서라면 뭐든 예민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브루스가 나를, 나처럼 필사적이고 조급한 방식은 아니라고 해도 딱 그만큼 나를 좋아한다는 걸 그 한숨소리를 들은 순간 알았다.


 배시시 웃으며 눈을 감자 혀차는 소리가 이어 들렸다. 놀랄만큼 갑자기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바짝 마른 입 안에 군침이 감돌고, 몸도 떨리지 않았고, 팔마디도 더 이상 얼얼하지 않았다.


 저택에 온 지 2년, 나는 한 뼘이나 컸다. 나는 내가 자라나는 만큼 아저씨가 나를 생각하는 시간도 길어졌음 좋겠다고 생각하며 행복한 기분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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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화 로키도티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