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린cha님 리퀘 <브루딕뎀 섹피 AU로 두 사람의 아이를 동시에 임신한 딕>

* 섹피 세계관 간단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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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레를.


 서재 문 옆에 기대어 선 데미안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입을 다문 채 살짝 열려있는 문 틈으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그레이슨, 주인님, 자궁, 아이, 준비. 익숙한 단어와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드문드문 들려왔다. 서재에서 아버지는 집사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웨인 저택의 방이란 기본적으로 넓기 때문에 문 바깥에 서 있는 위치에서 온전한 하나의 문장을 듣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데미안은 어려서부터 총명한 소년이었기 때문에 짤막한 단어만으로도 서재 안의 비밀스러운 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해냈다.


 어두운 복도에 홀로 선 소년의 표정이 묘했다.


 그렇구나. 아버지는 그레이슨을. 처음부터 몰랐던 것도 아니었지만 새삼스레 상처받는 기분이었다. 


 아버지와 딕 사이에 켜켜이 쌓여왔던 시간에 대해 소년이 아는 것은 별로 없다. 오래전부터 정말 가족처럼 긴 시간을 함께 해왔다는 정도의 단편적인 정보만이 데미안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대강 들었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함께 있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특유의 분위기에 대해 데미안이 느끼는 것은 자신은 결코 저런 식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관계를 평생이 걸려도 형성하지 못할 거라는 막연한 짐작이었다.


 웨인이 입양한 골든 보이. 핸섬한 마스크와 유머감각, 깔끔한 매너와 다정한 성품으로 인망이 높은 딕 그레이슨은 서커스 출신이다. 떠돌이 출신이 고담을 세운 명문가 웨인의 대문을 넘어 그 안의 일부가 된 일에 기구한 사연이 없을 리가 없다.


 딕의 가족이 속해있던 헤일리 서커스는 미국 각지를 떠돌며 예인들의 기술을 보여 관객의 열광을 받고 그것으로 돈을 벌었다.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발길 닿는 도시의 넓은 공터를 빌려 커다란 천막을 세우는 이들의 삶은 자유로웠다.


 하지만 중력이 없는 것처럼 가볍고 자유롭던 플라잉 그레이슨의 명성도 하루 아침에 깨어지고 말았는데 그 까닭은 인간 본연의 탐욕 때문이다.


 헤일리 서커스가 고담에 도착했을 때 어떤 건달 하나가 서커스 단장을 찾아가 돈을 바치거나 자신의 일을 도와 위험한 물건을 다른 도시로 옮기는 것을 돕도록 요구했는데, 단장은 당연히 거절했다. 그에 앙심을 품은 건달은 서커스 단장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공중 그네의 밧줄에 산을 부었고, 곡예중이던 그레이슨 가족은 추락했다.


 그리고 그날 그 순간에 브루스 웨인이 관객석에 앉아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레이슨 부부는 죽는 순간에 크게 고통스럽지 않았으리란 것이다. 수십 피트 위의 공중에서 떨어진 그레이슨 부부는 그대로 절명했다. 안전 그물도 없이 추락했다면 죽는 것이 당연한 높이였다. 혹여 운이 좋아 살아남는다고 하더라도 평생 남을 부상이나 식물인간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부부 사이의 어린 아들은 로빈이라는 그 별명대로 실로 어린 새와 같아서, 소년이 떨어지는 순간 관객들은 일순 소년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고 혼란스러워하며 진술했다. 


 일반인- 즉 원인(猿人)의 눈에도 소년의 모습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면 반류이자 극히 드문 고양이과 중종인 브루스 웨인의 경악은 대단했다. 딕이 떨어지는 순간, 브루스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푸른 새가 힘을 잃고 작은 날개를 허우적대며 후두둑 떨어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원인에 불과했을지 몰라도 바닥에 떨어지는 아이의 모습은 분명히 새였다.


 살아남은 소년은 곧장 병원에 옮겨졌고, 브루스 웨인은 일면식도 없는 소년의 병원에 병문안 갔다. 자신이 본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두 사람의 제대로 된 첫만남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평범한 인간인 줄 알고 살아왔던 딕은 죽음에 맞닿은 충격적인 경험을 계기로 자신이 일반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떨어져 죽었을 고도에서 추락한 딕이 살아남은 것은 딕의 본질이 새였기 때문이었다. '선조귀환'이었다. 이는 딕의 조상 중 누군가가 반류였다는 것을 뜻했다. 번식력이 뛰어나 오늘날 인류의 대다수를 차지한 원인과 달리 반류는 수가 적지만 간혹 가다 이렇게 커다란 충격으로 각성하는 경우가 있긴 있었다.


 입원중인 딕을 만난 브루스는 부모님을 잃은 것도 괴롭지만 갑자기 다른 사람들이 전부 원숭이로 보여서 당황한 딕에게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다짜고짜 다가와 황당무계한 소리를 하는데도 딕이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깨어나보니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원숭이로 보이고 있었고 원숭이가 아닌 이들은 이따금씩 다가와 어린 딕을 만지작대며 금방이라도 덮칠 듯이 침을 삼키는 와중에 유일하게 이성적으로 딕을 대한 것이 브루스였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너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 반류이며 흔치 않은 선조귀환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널 노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고 브루스는 설명했다. 선조귀환이 반류 세계에서 인기가 많은 것은 이들이 반류의 특성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원인들의 강점인 번식력까지 갖추었기 때문이다. 중종으로 갈수록 아이를 낳아 대를 잇기 힘들어지는 반류들은 아이를 위해서라면 이따금씩 불법적인 수단까지 서슴없이 해치우는 일이 있었다.


 어린애가 이해하기엔 다소 어려운 단어와 난해한 개념으로 가득 한 설명이었음에도 머리가 좋았던 딕은 금세 브루스의 말을 이해했고 그가 놓고 간 반류에 관한 어린이용 설명 책자를 몇 번이고 꼼곰히 읽었다. 그리고 이해했다. 자신만이 줄 끊어진 허공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남은 것은 제게 날개가 있어서라는 것을.


 당시 서커스장 텐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원숭이 인간들은 반류에 관한 것을 눈앞에 들이대더라도 뇌가 그 모습을 인식하지 못 하고 보아도 못 본 것처럼 들어도 못 들은 것처럼 의식이 흘려버린다. 때문에 관객들은 눈앞에서 딕이 새가 되어 날개를 파닥인 모습을 보고도 눈의 착각이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것이다.


 딕은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고 침묵했다.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오랜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딕은 자신과 함께 살지 않겠냐는 브루스의 제안에 곧장 승낙함으로써 브루스를 놀라게 했다. 바로 대답하지 말고 시간을 두어 신중히 생각해보라는 브루스의 말은 낯선 남자에 대해 딕이 더욱 신뢰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해가 빨랐던 딕은 자신의 처지를 금방 깨달았고 아직 혼현도 다루지 못 해 다른 사람들이 원숭이로 보이는 자신이 부모 없이 혼자 남아 갈 만한 곳이 고아원밖에 없다는 것, 혹은 자신을 원하는 반류의 집에 팔려가듯 들어가는 것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떠돌이 예인 가족 속에 컸던 딕은 어려서부터 사람 보는 눈이 예리했다. 딕은 브루스 웨인이라는 남자가 그 엄해 보이는 강직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알고 싶었다. 이 눈 앞의 남자는 어떤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그래서 딕은 웨인 저택에 입성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렀다. 상류 사회에서는 브루스 웨인이 어린 서커스 고아를 입양한 사실을 가십거리로 삼았고, 반류 사회에서도 같은 화제를 입에 올렸다. 반류 중에서도 강하고 뛰어난 것으로 유명한 브루스 웨인의 행보에 대해서는 기존에도 워낙 관심이 많았지만, 지금껏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던 브루스가 파랑새 남자아이를 웨인저에 들였다는 것은 충분히 이슈가 될 만 했다. 몇몇 반류들은 귀하디 귀한 선조귀환 인간을 얻은 브루스의 행운을 부러워 했고, 개중에는 브루스의 마킹을 받는 딕을 질투하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떠들썩한 가십이라는 것도 백 일만 붉었다. 브루스 웨인은 선천적으로 타인에게 주목받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드러내는 타입이 아니었고 이리저리 딕을 내비치며 귀한 보물이라도 얻은 양 과시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브루스와 그의 고아에 대한 이야기는 점차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 

 

 열 살 때 웨인 저택으로 들어온 데미안 웨인의 경우는 딕 때와 달랐다. 소년은 브루스가 젊은 시절 잠깐 만났던 뱀 중종 탈리아 알굴 간의 관계에서 생긴 아들이었다. 자신을 당신의 아들이라며 소개하는 데미안에 대해 의심하기에 소년은 브루스와 이목구비나 분위기가 닮은 데가 많았다. 데미안은 곧장 웨인저에 받아들여졌지만 브루스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이 웨인저에 금방 익숙해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뱀 중종 탈리아와 고양이 중종 브루스 사이에서 태어난 데미안은 브루스와 같은 고양이 중종이었지만 그 성격은 모계에 더욱 가까웠다. 덩치 큰 고양잇과 맹수의 혼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동정심이 없이 오만한 냉혈동물과 같은 성격은 따뜻한 피 동물만이 존재하는 웨인 저택에서 겉돌 수밖에 없었다. 네코마타 중간종인 고양이 팀은 처음에 서열정리를 한다는 이유로 제 목을 물어뜯었던 데미안을 껄끄러워 하다 못해 싫어했고 늑대 중종인 제이슨도 건방진 꼬맹이에 대해 학을 뗐다. 부친인 브루스 웨인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살가운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데미안은 웨인 저택에 적응하는데 적잖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런 와중에 자신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것이 딕이었다. 딕 그레이슨은 본디 그런 녀석이었다. 외로움 타는 녀석이 있으면 먼저 가서 말을 걸어주고 아픈 것을 감추고 있으면 곧장 알아보고 염려해주는. 마냥 착하기만 한 녀석도 아닌데 그랬다. 별 이상한 녀석 다 보겠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만 어느새 딕의 눈치를 흘끗 살피는 자신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그레이슨 앞에선 누구나 그랬다. 야무진 팀 드레이크, 불평 많은 제이슨부터 심지어 아버지까지. 누구나 딕의 앞에 서면, 그 푸른 눈동자 속에 자신이 실제보다 더 괜찮은 녀석으로 비치길 바라는 것처럼 굴었다. 그러한 기분은 알 것 같다. 데미안 자신도 느껴보았으니까.


 누구에게나 베푸는 담백한 다정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미안은 그 담백한 온기가 좋아서 어쩔 줄 몰랐다. 같은 남자인데도 어딘가 따스한 살결과 깃털 냄새를 풍기는 그 마른 손이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입안이 바싹 말랐다. 


 아마도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는, 그레이슨을.


 하지만 그 깨달음은 늦었고, 좋아하는 감정조차 몇 년은 더뎠다. 자신이 생부의 존재를 알기도 전에 브루스와 딕은 서로를 보고 있었으니 애초부터 시작도 할 수 없는 관계였다. 


 이제 데미안도 웨인 저택에 적응했고 적당히 안정적인 시기니 딕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갖고 싶다며 알프레드와 상담하는 부친의 이야기를 듣게된 이후로 데미안은 말수가 줄어들었다. 눈에 띄게 조용해진 데미안의 모습에 팀조차 한 마디 할 정도였다.


 "저 새끼 악마 어디 아픈 것 아냐? 별일이네."


 저녁 식사 직후 곧장 2층 자기 방으로 올라가는 데미안의 뒷모습을 흘끗 쳐다본 팀이 중얼거렸다. 


 "글쎄."


 딕은 어깨를 으쓱이며 매쉬 포테이토를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쪽이라면 오히려 자신이다. 특별히 티내진 않지만.


 요즘 들어 딕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몸이 무겁고 머리가 둔했다. 팔 다리가 조금 저릿저릿하기도 한 것이, 아무래도 자궁 벌레 때문에 몸이 적응하느라 겪는 변화인 것 같았다.


 동생들에게는 아직 브루스 사이에서 아이를 가질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확실히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란 보장도 없는데 미리 설레발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선조귀환 케이스기 때문에 보통의 반류보다야 아이를 가질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남성의 임신 자체가 불안정하긴 했다. 브루스는 신중한 사람이었고 아무 것도 확정되지 않은 시점에 미리 입을 열어두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호르몬이 불안정하기 때문일까. 요 며칠째 딕은 석연치 않은 꿈을 꾸고 있었다. 꿈의 내용은 대개 비슷하다. 설핏 잠들어 있는 자신의 위로 검은 그림자가 올라탄다. 작은 형태지만 제법 묵직한 무게다. 어둠 속에서 발소리도 없이 조용히 걸어온 데미안이 제 위에 올라타고, 바지를 끌어내린다. 그레이슨, 네가 내 아이를 가졌으면 좋겠어. 내 아이도. 소년은 쉰 목소리로 자그맣게 입술을 달싹였다. 


 10살 짜리 어린 동생과 몸을 섞는 꿈이라니. 딕은 미간을 조금 찡그렸다. 욕구불만인 걸까.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상대가 데미안인 것은 심하지 않나. 불편한 심정에 딕은 조금 헛기침을 했다. 그런 딕을 보며 팀이 고개를 갸웃대고 묻는다. 감기야?


 제 방 침대에 누운 데미안은 천장을 올려보며 베개를 끌어안는다. 알프레드가 세탁해 둔 베개에서는 보송보송한 햇살 냄새가 배어 있었다. 후각이 예민한 데미안은 인공적인 향기를 질색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섬유유연제는 전혀 쓰지 않는다.


 한참 동안 데미안은 침대 위를 게으르게 데구르르 구르다 혼자서 비슥이 웃었다. 제 형은 아무 것도 모른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지만, 자신을 의심하기에 그는 데미안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딕 그레이슨은 밤마다 자기 전에 마시는 우유에 들어있는 약의 존재에 대해 짐작도 하지 못한다. 반쯤 환각 상태에 빠져 잠들어 있는 방으로 자신이 몰래 스며드는 것도 전부 꿈의 편린 정도로 생각해버리겠지. 


 그레이슨이 웨인의 자식을 낳는다면 말야. 그 상대가 나인 것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 아냐.


 그렇게 생각하며 고양잇과의 소년은 나이 먹은 뱀처럼 킬킬 웃었다.


 소년의 품성은 분명히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가 목적을 위해서라면 조금도 수단 가리지 않는 부분은 분명 그의 핏줄 속에 서늘한 피를 지닌 모계의 특성 또한 일정 부분 서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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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화 로키도티르